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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소송 고분고분… 존재는 그저 고개 숙일 뿐, 우리가 몰랐던 합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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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진주꽃
댓글 0건 조회 0회 작성일 26-02-04 0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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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소송 겨울에 갈 국내 여행지를 떠올려보면 늘 거기서 거기다. 이미 가봤거나 혹은 사람이 너무 많이 몰리는 곳이 대부분이다. 그만큼 겨울 여행의 선택지는 좁다. 시야를 조금만 넓혀보자. 전혀 생각지 못했던 곳에서 의외로 보물을 만나게 될지도 모르니까. 그리고 합천은 겨울이기에 갈 만한, 우리가 몰랐던 겨울 여행지다.
새소리·물소리·바람소리의 향연 ‘소리길’겨울이어서 더 아름다운 길
합천 여행의 첫 번째 이유는 해인사다. 세계문화유산인 그 절을 보기 위해 합천으로 들어간다. 보통은 차를 이용해 가급적 경내와 가장 가까운 곳까지 들어가려 하지만, 쫓기지 않는다면 아래편 주차장부터 걸어서 올라가보길 권한다. 꼭 걸어볼 만한 길이어서다. ‘소리길’이라는 이름도 있다. 계곡이 가진 생명력을 소리로 느끼는 길이라는 의미다. 이름처럼 물 흐르는 소리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그 위로 새가 지저귀는 소리,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의 소리가 얹어진다. 잔잔하지만 경쾌하기 그지없는 자연의 오케스트라 협연 같다.
소리길의 총길이는 7.3㎞, 4개의 구간으로 나누어진다. 가장 아래 각사교에서 가장 위의 영산교까지 걸어서 닿으면 비로소 해인사 구간으로 이어진다. 이 길을 반드시 걸어보라고 권하는 이유는 가야산 19경 중 16경이 이 길 안에 있어서다. 그러니 소리길만 걸어도 가야산의 백미를 거의 다 맛보는 셈이 된다.
소리길의 하이라이트 구간은 홍류동이다. 농산교를 지나 길상암까지 이어지는 구간이다. 이름을 보면 왜 그렇게 불렀는지 단박에 이해가 간다. 이곳이 아름다운 계절은 가을이구나, 직감적으로 느껴진다. 게다가 합천은 눈이 잘 오지 않는 지역이다. 지리산에서 뻗어 나온 산맥이 에워싸고 있는 분지 지형이어서 서쪽에서 몰려오는 눈구름이 좀처럼 지리산을 넘지 못한다.
그런데 운이 좋게도 설경을 만났다. 계곡은 물 흐르는 모습을 찾기 어려울 만큼 전체가 하얗게 얼어붙은 모습이다. “홍류동의 백미는 가을”이라던 이야기를 정정해 주고 싶을 만큼 매혹적인 풍경이다. 골짜기는 수묵담채화가 되어 눈에 담겼다. 다리 위에 올라 계곡을 내려다보면 하얗게 얼어붙은 계곡물이 기기묘묘한 무늬를 그리고 있다. 가만히 계곡을 감상하고 있자니 온갖 소리가 귀에 날아와 닿는다. 둔탁하게 ‘뚝’ 소리가 나더니, 몇 걸음 움직이면 얼음 아래로 ‘쪼로록’ 흐르는 소리가 발길을 붙잡는다. 홍류동 계곡의 겨울 소리는 걸음을 멈추게 하는 힘이 있었다.
소리길을 걷다 보면 껍질이 벗겨진 채 속이 드러난 소나무를 보게 된다. 칼로 그어서 만든 상처가 수십개씩 나 있다. 송진을 얻기 위해 인간이 낸 상처다. 일제강점기부터 시작한 송진 채취는 1960년대까지 이어졌다. 소나무는 그때의 상처를 간직하고 있었다. “한 번 훼손된 자연은 회복이 어렵습니다.” 안내판의 문구가 시리다.
5만년 전 200m 크기의 운석이 떨어진 곳국내 유일의 운석충돌구, 초계적중분지
합천읍에서 동쪽으로 나아가면 첩첩이 늘어선 산지를 만난다.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도 있다. 초계면과 적중면은 누가 보아도 도드라지는 분지 지형이다. 지금은 외부로 통하는 도로가 군데군데 놓였지만, 원래는 어느 방향으로도 트인 곳이 없이 꽉 막힌 곳이었다. 분지 안쪽으로는 이렇다 할 물길도 없다. 이 안에서 터를 잡고 사는 사람들은 산의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저수지에 가두어 쓰고 있을 정도다.
이를 유심히 살핀 고(故) 임판규 선생은 의구심을 가졌다. 그는 합천 토박이였고, 의사였으며, 천문에 무척 관심이 많은 인물이었다. 임판규 선생은 이곳이 범상치 않은 곳이라고 보고 국가 차원의 조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해 왔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이 땅에 대한 자료를 모으고, 여기에서 도출한 결과를 바탕으로 수십 년간 꾸준히 문제를 제기할 만큼 열심이었다.
그 결과,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 초계면과 적중면 일대는 5만년 전 운석이 떨어져 만들어진 지형이라는 것. 더구나 이 정도 규모의 운석충돌구는 세계적으로도 아주 희귀한 사례였다. 한반도에서 정식으로 인정받은 건 첫 번째 사례다. 그야말로, 한 사람의 집념이 밝혀낸 지질학적 쾌거인 셈이었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지질연구센터는 분지 내에서 깊이 142m 아래까지 땅을 뚫었다. 그 지점에서 꺼낸 표본의 탄소연대를 측정해보니, 운석의 충돌로 강력한 충격파가 일어나 지하에 거대한 웅덩이를 만들었고, 이 영향으로 암석과 광물 따위에 충격 변성이 일어난 흔적이 나왔다. 세계적으로 공식 인정을 받은 운석충돌구는 200여개에 달한다. 영어로는 크레이터라고 부르는데, 아시아에서도 드문 사례로 꼽힌다.
충돌구는 지름만 약 7㎞다. 충돌구의 크기와 깊이 등으로 추정한 운석의 크기는 200m 정도일 것으로 보고 있다. 그 안에 초계면과 적중면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충돌구 지형이 세찬 바람을 산이 막아준 덕분에 연중 일정한 기후를 누렸다. 땅이 평평해서 농사를 짓기에도 좋았다.
이곳의 지형을 한눈에 담을 최적의 장소는 대암산이다. 대암산은 운석이 땅에 충돌하면서 솟아오른 서쪽의 산이다. 정상은 해발고도 591m. 이곳에 서면 초계적중분지가 거대한 파노라마처럼 눈에 들어온다. 꼭대기에는 패러글라이딩 활공장도 있다. 패러글라이딩 파일럿 사이에서는 최고의 활공 코스로 꼽히는 유명한 스폿이다. 역시 바람의 영향을 적게 받는 지형이라서 패러글라이딩도 안전하고 안정적이다.
최근에는 대암산 활공장에서 활공이 끝나는 시간쯤부터 백패커가 모여들기도 한다. 해가 질 무렵 텐트를 치면 하늘에서 별이 총총 뜨기 시작하고, 이내 땅 위에서도 별이 뜬다. 마을에서 밝히는 불빛이 하늘의 별빛과 어우러져 환상적인 풍광을 자아낸다. 다만 이곳으로 오르기 위해서는 임시도로를 따라 이동해야 하는데, 오르는 길이 협소하고 굴곡이 심하다. 활공장을 수시로 오가는 차량도 많아서 주의해야 한다.
동이 트기 전 합천의 마지막 목적지를 찾아 쌍책면으로 향했다. 황강이 박물관 앞에서 느리게 흘러가고 있었다. 박물관 옆 언덕을 올라 뒤로 돌아가니 불쑥불쑥 솟아오른 고분이 눈에 들어왔다. 오늘의 최종 목적지다.
경상북도 일대는 고분이 많다. 신라의 흔적이기도 하지만, 가야의 흔적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지역이 고령이다. 합천과 가까운 고령은 대가야의 땅으로 잘 알려져 있다. 가야는 여러 소국의 연합체였다. 그렇다면 합천의 고분은 가야의 여러 나라 중 어느 곳의 흔적일까.
그 답은 합천박물관에서 들을 수 있다. 합천은 ‘다라국’에 속했었다. ‘다라국’은 변한을 모태로 한 가야의 세력 중 하나였다. 알려진 게 많지 않지만, 박물관 옆에서 수십 기의 고분이 발견되고, 적잖은 유물이 출토됐다. <양직공도(梁職貢圖)>와 <일본서기>에 기록으로만 전하던 ‘다라국’의 존재가 비로소 세상에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현재 출토가 이루어진 고분은 극히 일부다. 이 일대에는 약 1000기에 달하는 고분이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옥전고분군이라고 부른다.
멀리서부터 동이 트고 밝고 따스한 햇살이 떠오르자 그 빛이 사위를 밝혔다. 밤새 얼어붙었던 땅에서 한기가 증발하기 시작했다. 머릿속으로 상상했던 모습이 눈앞에 펼쳐지기 시작했다. 고대의 고분군에서만 볼 수 있는 겨울의 풍경이다. 말로 형용하기 힘든 신비로움. 오랫동안 시간의 저편에 잠들어 있던 고대국가가 깨어나는 듯한 순간이었다.
합천의 맛
사하촌의 송이버섯 정식
해인사의 사하촌은 이제 식당가가 되었다. 숱하게 많은 가게 중 삼일식당은 가을에 채취한 온갖 나물과 버섯요리가 일품이다. 특히 가야산에서 채취한 ‘송이버섯 정식’은 송이버섯으로 말갛게 끓인 국의 향기가 그윽하다. 무려 서른 가지 찬이 상을 가득 채우는데 맛까지 좋아서 송구한 기분이 든다.
예쁘기도 한 오곡밥
거대한 합천댐이 마주 보이는 자리에 합천호관광농원이 있다. 농가체험 농원이라서 숙소도 있고 다양한 즐길거리도 있다. 하지만 이곳을 대표하는 건 오곡밥이다. 보리, 수수, 조, 찹쌀, 흑미가 오색으로 예쁘게 담겨 나오는데 보기에도 좋고 맛도 좋다. 나물은 모두 현지 농가에서 수매한 것만 취급한다. 곁들여 나오는 된장찌개니 제육볶음, 김치까지 모두 정성이 가득하다.
향이 은은한 송기떡
서울떡방앗간은 초계면에 자리한 오래된 방앗간인데, 소나무의 껍질로 만든 송기떡으로 이름이 났다. 송기떡은 춘궁기에 구황식품으로 먹던 것. 이수광의 <지봉유설>에도 등장한다. 소나무의 속껍질을 불리고 곱게 갈아 찹쌀, 콩가루를 함께 써서 만든다. 검붉은 빛깔의 떡 단면을 보면 소나무의 껍질에서 보았던 색채를 닮았다. 담백하고 쫄깃한 맛이 좋은데 특히 뒤늦게 입안으로 퍼지는 은은한 소나무 향이 일품이다.
나는 학계 밖의 사람이므로 대학 문제에 대해 입을 열기가 애매한 위치에 있다. 내부자가 아니므로 함부로 발언하는 게 무책임할 수도 있지만, 이해관계가 없으므로 내부자들의 많은 숫자가 공유하고 있지만 말하기 힘든 이야기를 대신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오지랖인 줄 알지만, 인공지능 시대에 들어 지식 생산 및 유통 그리고 대학의 미래에 대해 많은 이야기가 오가고 있는 상황을 빌려 몇 마디 나누어보고자 한다.
오늘날의 대학 제도에는 서로 다른 세 가지 기능이 중첩되어 있다. 첫째는 (학부) 학생들을 교육하고 졸업장을 발부하는 교육 인증의 기능이며, 둘째는 기업은 물론 국가와 사회가 필요에 맞추어 대규모로 지식 정보와 연구 역량을 동원하는 지식 생산의 기능이며, 셋째는 전문 연구자의 훈련 및 양성과 연구 자율성 보장의 기능이다. 이 세 가지 기능은 서로 중첩되는 부분이 많이 있으므로 얼핏 보면 불가분의 한 덩어리처럼 보이지만, 역사적으로 보자면 엄연히 서로 다른 시대와 조건에서 생겨난 별개의 기능들이다. 그런데 이 세 가지 기능을 대학이라는 하나의 제도에서 모두 소화하고 심지어 독점하려고 하는 과정에서 여러 문제가 생겨날 뿐만 아니라 인공지능의 출현이라는 현재의 조건에서는 더 이상 바람직하지도 가능하지도 않다고 보인다.
서양에서 근대국가의 형성과 함께 대학이 맡게 된 주요한 기능은 지배 엘리트들을 양성하는 것이었고, 그 주된 교육 내용도 신학과 라틴어, 그리스어 고전을 중심으로 했다. 그 본령의 임무는 새로운 지식의 탐구가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진리”의 전수일 뿐이었고, 졸업자들이 누린 이들의 상징 권력은 바로 그러한 “진리 전수자”의 후광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이렇게 비교적 소수에게만 개방되어 있었던 대학이 대중화된 것은 20세기 들어 2차 산업혁명을 거치며 화이트칼라 중간 관리직 인력에 대한 수요가 폭발하면서 이들을 양성하는 기능이 대학에 주어지게 되면서였고, 교육의 내용도 전통적인 “교양”과 초보적인 학과 전공이 결합된 형태로 바뀌었다. 20세기 끝 무렵 지식 기반 경제가 출현하면서 대학 졸업장에 대한 사회적 수요는 더욱 커졌으며, 노동시장에서 경쟁력을 갖는 데 도움이 되는 학과로의 쏠림 현상이 극심해지는 일도 나타났다.
한편 연구를 통한 새로운 지식의 생산이라는 기능이 대학에 주어진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1810년대 나폴레옹에게 낭패를 당한 프로이센은 국가 개혁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진리와 지식의 탐구”를 본령으로 삼는 훔볼트식 대학을 장려하며, 이러한 새로운 모습의 대학이 다시 미국에서 폭발하던 실험 과학에 대한 관심과 결합되면서 연구 대학의 모습으로 나타나게 된다. 학부가 아예 없고 대학원만 있는 존스홉킨스대학이 문을 열었던 1876년이 그 이정표가 되는 해였다고 할 수 있다.
이질적 세 기능의 숱한 갈등
하버드나 예일과 같이 유서 깊은 지배 엘리트 양성의 “교육” 대학들은 이러한 흐름에 처음에는 거부감을 보였지만 대세는 이미 결정되어 있었다. 2차 산업혁명으로 대기업들이 자체 연구소를 만드는 등 새로운 지식의 탐구와 연구의 기능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였기 때문이다. 결국 이 대학들도 대학원을 강화하면서 연구 대학의 꼴을 갖추어 나가게 되었다. 반면 연구 대학들도 안정된 현금 흐름을 확보하기 위해 칼리지를 설립하고 학부생들을 받게 된다. 결국 20세기에 들어오면 두 가지 모델이 하나로 수렴하고 이것이 지배적인 대학의 모델이 된다. 대학은 이제 “연구”와 “교육”을 모두 자기 정체성으로 삼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결합은 이미 오래전부터 여러 갈등을 낳은 바 있다. “최고의 연구가 곧 최고의 교육으로 이어진다”든가 “인격의 형성과 지식의 생산은 동일한 과정이다”라는 향기로운 명제들로 대충 얼버무리기에는 두 가지 기능의 간격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학부생들 중에도 연구 그 자체에 몰두하는 이들이 물론 있지만, 4년을 보내고 졸업장을 받아나가는 더 많은 숫자의 학생들은 “연구”에 별 관심이 없다. 이들은 좋은 교육과 좋은 추억과 좋은 인연으로 자신만의 인격을 형성하고 그 가치를 사회적으로 인정받아 좋은 직장을 얻기를 원할 뿐이다. 대학 공부는 그 최종 목적의 수단일 뿐이다. 한편 교수들도 괴롭다. 우선 자기의 연구를 극단으로 밀고 나가 새로운 지식을 생산하고픈 연구자 유형에 속하는 이들은 학생들과 함께 울고 웃고 뒹굴어야 하는 교육 업무가 짐이고 부담일 뿐이다. 반면 그런 일을 즐기고 소중히 여기는 교육자 유형에 속하는 이들에게는 계속 떨어지는 연구 성과 제출의 압력이 버겁다.
그런데 20세기 말엽이 되면 여기에 “제3의 충격”이 나타난다. 기업은 물론 국가나 대형 연구재단에서 거액의 연구비를 내걸고 큰 주제의 연구 프로젝트를 발주하는 것이 대학 재정의 주요 원천으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이에 교수와 대학원생들은 이러한 대규모의 집단적 연구 프로젝트의 성공적인 운영을 위해 만사를 제쳐놓고 거의 동원되다시피 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되었다.
물론 여기에도 이를 아름답게 포장하는 논리가 있다. 기업, 사회, 국가가 봉착한 문제들과 그 필요에 부응해 대학에서 전문성을 축적한 연구자들이 각자의 독자적 연구의 맥락과 문제의식의 연장선에서 답을 낸다는 것이다. 기업, 사회, 국가는 원하는 답을 얻어서 좋고 연구자들은 자신들 스스로의 문제의식을 확장할 수 있어서 좋으니 그야말로 공생공영이라는 것이다. 말은 참 좋지만 그런 행복한 경우가 얼마나 될까.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여기에서 자신의 “개인적” 연구 작업과 집단적으로 수행하는 “공적” 연구 작업을 나누어야 하는 이중부담의 위치로 떨어진다. 교수들도 대학원생들도 정신없이 바쁘다. 가뜩이나 이질적인 연구와 교육이라는 두 가지 과정에 더해 납기에 맞추어 발주자의 필요에 맞추는 지식 생산이라는 또 다른 이질적인 임무까지 주어지게 되었다.
문제는 이렇게 서로 다른 세 가지 기능을 억지로 겹쳐놓은 지금의 대학이 지속 가능한가이다. 대학이라는 제도의 성격을 요즘의 언어로 풀어본다면, “지식의 생산, 유통, 소비를 전담하는 역동적인 플랫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인공지능은 이러한 역할들을 전면적으로 잠식해 들어올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조건에서 졸업장 발급 기관이자 연구자 양성 기관이자 대규모 지식 생산 기관이라는 것에 힘입어 스스로를 유지하는 구조가 무슨 전망이 있을까? 소수의 최상위 대학들을 제외하면 조만간 존망의 위기에 처할 수 있으며 최근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러 유서 깊은 대학들의 재정위기와 폐교 사례는 이를 뒷받침한다.
큰 자원 들겠지만 가야 할 길
이 세 가지 기능을 이제 대학에서 풀어놓을 때가 된 것이 아닐까? 대학의 졸업장 대신, 문제 해결 이력, 협업 기록, 공공 과제 참여 내역을 기반으로 국가나 시장의 개입 없이도 공적인 규칙, 대중적 검증, 투명한 기록을 통해 개인에게 인증서를 발부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은 불가능한가? 기업, 사회, 국가가 모두 자신들이 당면한 문제들을 공공에 꺼내놓으면 거기에 정말로 관심이 있고 애정을 쏟을 수 있는 연구자들이 달라붙어서 서로 개방적으로 지식과 정보와 아이디어를 나누는 전 국민적인 연구 공유장, 즉 연구 결과만이 아니라 연구의 전 과정과 결과까지도 공개적으로 축적되고 검증되는 공공 지식의 장을 조직하는 일은 불가능할까? 자기 연구를 꾸준히 성실히 진행하는 연구자들이 각자의 연구가 필요로 하는 호흡과 시간 지평에 따라 작업을 해나갈 수 있도록 하고, 그에 따라 소모임을 만들고 번역과 논문을 생산하도록 하는 지식 인프라의 구축은 불가능할까?
큰 자원이 들어가는 일임은 틀림이 없다. 하지만 현재의 시스템에서 우리가 치르고 있는 비용의 크기는 어떠한가? 앞으로 닥쳐올 지식 산업의 환경 변화에 대한 적응의 문제는 또 어떠한가? 직장을 잡아 사회에 진출하고 싶은 게 전부인 젊은이들을 붙잡아놓고 4년간 돈과 시간을 뽑아내는 일은 앞으로도 계속될 수 있을까? 연구와 지식 생산에 젊음을 송두리째 바친 이들이 시간과 돈에 쫓겨 서서히 시들어가는 이 상태는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 그저 규모만 거대할 뿐 범상한 데이터와 아이디어와 논문으로 이루어진 범상한 결과물로 국가와 사회로부터 거액의 연구비를 받아가는 행태는 언제까지 계속될까? 존스홉킨스대학의 설립은 그 자체가 기존 대학 체제에 대한 도전이었으며 20세기형 대학의 진화를 촉발한 중요한 한 계기였다. 지금도 그에 맞먹는 파격적인 혁신이 문 앞에 다가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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